오늘 독일의 하늘은 늘 그렇듯 구름이 가득하고 맑지 않다. 내 기분도 오늘은 아침부터 불편함을 느낀다. 바로 어제 나눴던 대화 때문이 아닐까.
얼마전 소수자로서의 삶이라는 글을 쓰고 나서 그 주제를 토대로 클럽하우스에서 조금은 진지했던 대화를 나눴다. 내가 소수자로 겪은 경험과 내가 소수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였다. 대화를 하던 중에 우연치 않게 이런 말을 들었다. - 나는 독일에서 살면서 소수자로서 불편한 상황에 놓인 적이 없어. 굳이 신경 예민하게 생각을 해야하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말을 들은 직후 나는 머리가 띵했다. 내 생각의 전반에 지배하는 의견과 달라서가 아니었다. 나와 다른 의견에 대해선 존중하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머리를 아프게 했던 이유에 대해서 솔직히 말을 하자면 과거의 내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한 때는 주위에 상황에 대한 무신경이 정신 승리, 나를 지키는 방도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가 말했다. - 너는 주변 사람들의 상황에 부러워하거나 질투를 하거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아서 스트레스가 덜 한 것 같아. 정신력이 강한 것 같아. - 그래 자잘한 거 하나하나 신경쓰고 그러면 피곤하기만 해. 나만 기분 나쁠 일이고. 나는 그걸 내 장점으로 받아들였다.
MBTI 검사를 했더니 ENTJ 위대한 지도자 형이 나왔다. 거기에서의 내 성격에 대한 분석은 많은 장점이 있지만 공감능력이 부족한 단점이 있었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과연 내가 택한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가볍게 무시하는 거만한 태도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나의 무신경에 대한 수치심을 느껴야 했을 순간에 너무나도 당당한 사회의 승리자로 나를 포장하며 정신 승리를 했던 건 아니었을까?
재밌는 사실은 이런 나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된 시간이 사실 길지는 않다는 것이다. 큰 계기는 지난 일 년간 독일에서 만난 고마운 친구들의 추천으로 사회의 약자들, 사회의 불공평함에 대한 내용을 다룬 책들을 많이 읽게되면서였다. 이전에는 내가 중심이 돼서 내 지식에 대한 욕구를 취하기 위해 이런 책을 읽었다면, 지금은 조금 더 가슴으로 느끼면서 내가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지 고민하면서 조금 더 액티브한 독서를 하고 있다. 근래 읽은 책들에는 내가 나에 집중하느라고 넘겨 지나갔던 사회적 소수자 그리고 약자들에 대한 무신경 무관심이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잘 설명되어 있었다.
그렇게 점점 배웠다. 나는 주류가 아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안락함 속에 파묻혀 불평하고 있다. 내가 갖는 작은 관심조차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영향력 있는 백인 남성이 흑인 인권 운동 커뮤니티의 스폰서가 되어 알리는 것 처럼 사회에서 약자의 입장에 놓이지 않은 누군가가 갖는 관심은 더 큰 영향력을 지닐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항상 명심해야하는 건 그 누군가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사랑하는 안드레아라는 책에서 어머니 룽잉타이가 쓴 한 구절이 있다.
- 홍콩은 잘사는 지역들 붕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심한 곳 중 하나야. 아이들 네 명 중 하나가 극빈층이지. ... 엄마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그 할머니에게 모든 것을 줄 수는 없어. 그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아니고. 그렇다면 엄마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엄마는 이런 불합리한 사회구조에 대해 사람들이 깨닫길 바라면서 글을 써. [룽잉타이, 안드레아, 사랑하는 안드레아, 양철북, 2015. 78-79]
나는 여전히 액티브한 소셜리스트가 아니다. 사회를 위해서라면 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여전히 모든 일에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한 피로를 느끼기도 한다. 아직도 내가 영위하고 싶은 어느 정도에 대한 이기심이 있는 그런 약점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주변에 관심을 갖고 있고 이런 주제에 대한 대화를 더 자주 나눠야한다고 믿으며 특히 내 주변에 사회에서 일종의 특권을 가진 사람들과 더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 영향력이 없는 나조차도 할 수 있는 건 이런 글을 쓰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나누는게 아닐까? 그 누군가는 내 글을 읽고 조금은 본인의 생각을 고찰하게 되지는 않을까.
그래서 이 부분에서는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모두의 상처있는 경험을 예민하다고 여기면 안 됩니다. 그게 설사 나를 상처받게 하고 피곤하게 하는 일일지라도 말이죠.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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