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회사 이름이라 "전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엄연히 돈 주는 회사가 바뀌었기 때문에 "이직"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이직에 성공한 첫달은 막연히 신났었다. 내가 모르는 분야의 새로운 지식에 대한 갈망,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서 뿜어지는 아드레날린, 다른 가능성의 지평을 넓혔다는데서 알게모르게 오는 자신감, 처음 두달은 내 주변에 긍정적인 차크라들이 떠다녔다. 원래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고 불가능은 노력으로 가능하게 만들어낸다> 라는 마인드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직업이 바뀌어도 쉽게 적응하고 퍼포먼스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날 위기감이 문득 찾아왔다.
"벌써 세 달째인데 아는게 없는 것 같아."
이 세 달이라는 시간의 무게감이 갑자기 느껴졌다. 독일에서는 새로 취업을 했을 때 한국보다는 조금 더 엄격한 육 개월의 수습기간이 주어진다. 회사가 직원들의 서로의 합을 확인하는 시기로 자의적인 타의적인 관계의 단절이 흔히 일어난다. 실제로 전에 속했던 팀에서는 그 안에 스스로 그만둔 사람도 세 명, 타의로 잘린 사람도 세 명 정도 있었다. 삼 개월은 바로 이 수습기간의 반, 즉 보통 중간 평가가 일어나는 날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여태까지 아무런 퍼포먼스도 보이지 못했던 내 스스로가 모자란다는 생각을 갖게됐다.
이런 지식의 부재에 관한 위기감은 문득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에 찾아온 위기감은 새로운 조직으로 바꾼 낯섦 그보다 조금 더 깊은 부분에서 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오며 했던 선택 하나하나가 결코 헛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었고 내가 광고팀으로 옮기는 길 위의 반딧불이 역할을 해줬다. 그러나 그 선택중 하나, 내가 마케팅 교양 수업의 학점조차 말아 먹었던 공대생이었다는 과거가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내가 과연 이런 내가 전문가 조직에 끼어서 전문가인척 광고주들을 대할 자격이 있을까?
그래서 회사내 멘토 한테 면담 신청을 했다.
내가 이 글을 통해서 공유하고 싶은건 바로 이 부분이다. 나같이 극단적인 직무 변경을 하지 않았더라도 2021년 코로나 사태로 인해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한 스푼 더 하고 있을 분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다.
나랑 전 직무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인데 이 분도 회사 내에서 직무 변경을 꽤 지그재그로 해왔다.
내가 앞서 말했던 고민들을 털어놓았을 때,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듣던 멘토가 몇가지 펀치를 날려왔다.
"그럴 수 있어. 너가 갖는 기분은 너무나도 당연한거야. 관성의 법칙이 있듯이 변화란 모든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가져다줘. 아무리 변화에 관대한 사람이라고 해도 인생의 시기에 따라 변화의 충격이 다를 수 있어."
머리가 띵.
"너는 너를 잃지 않았어. 내가 너랑 같이 일할 때 너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새로운 토픽에 접근했고 냉철하게 상황을 바라보고 바른 방향으로 불도저처럼 이끌 수 있었어. 나는 너의 능력이 단 두 달 만에 달라졌을거라고 보지 않아. 너가 잃은 건 단순히 너의 자신감이야."
마음이 찡.
"내가 너한테 추천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방향이야. 하나, 너만의 기술이 필요해. 너 스스로가 그 팀에서 필요한 기본적인 기술들을 터득 했다고 믿을 수 있게 만들어. 이건 너가 공대생이든 마케팅에 관한 지식이 있던지 없던지 상관없어. 너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고, 새로운 분야에 대한 배움이 끝이 없다는 걸 이미 스스로 알고있어."
예스.
"그리고 벤치마킹을 해. 너네 팀에서 도움이 충분하지 않으면 다른 국가 프랑스, 영국, 이탈리, 스페인의 같은 업체와 일 하는 사람들에게 자문을 요청해. 그 사람들은 어떻게 일 하는지 한 번쯤 들어볼 이유가 있어. 질문? 그 사람들한테 질문해봐. 너는 고객들하고 대화할 때 어떤 점을 질문하니?"
"하나 더 있다. 그리고 잊지마. 너가 공대생 백그라운드가 있고, 리테일 비즈니스를 잘 알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점. 그리고 그 점이 그 사람들의 삶을 밝혀줄게 있을거라는 점."
뻔할 수 있지만 뻔하게 들리지 않았다. 가끔은 이런 뻔한 이야기도 주변에서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 뻔한 사실들의 존재감은 사라진다. 왜 나는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가? 아니면 스스로 생각을 했지만 누가 말해주기 전까지 주저 했던 것일까? 이 멘토링을 하고 나서야 나는 다시 나에대해 돌이켜 볼 수 있었다.
나는 등 껍질이 없는 민달팽이인데 등 껍질이 있는 달팽이가 되고 싶다고 내 몸을 구겨넣어 스스로를 속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등 껍질이 없으니 아무것도 못할거라도 비가 오면 숨을 곳이 없을거라고 스스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그 날 이후로 몇가지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기록했다.
공대를 졸업했으니 공대생 처럼 줄 글보다는 포인트로.(히히히)
이런 To do list를 기록하는 것 만으로도 조금 안정감을 찾았다.
누군가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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