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광고팀의 어카운트 매니저로 이직을 하고 두 달만에 내가 담당하는 브랜드들을 배정 받았다. 원래는 한 달 정도의 트레이닝을 거친 이후에 브랜드를 받는데 회사 내부에서 있는 여러 변화들 덕분에 나는 한 달의 시간을 더 벌었다.
총 두 달간의 한량같던 시간들이 좋으면서도 불안했다. 내가 뒤처지는 건 아닐까? 이 전 팀에서는 일당백같이 3인분의 일을 해치우던 나였는데 여기서는 믿음을 주지 못하나? 육 개월이 지나도 아무것도 모르겠는 느낌이 지속되면 어쩌지?
그래서인지 내게 처음 브랜드들이 주어졌을때 나는 신나하며 고객사들에게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성사된 미팅에서 한 브랜드 담당자가 새로운 상품 출시를 위한 마케팅 전략을 제안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마음이 두근두근 거렸다. 내게 주어진 첫 미션. 나는 잘 할 수 있을까?
우리는 크고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아는 브랜드 들을 담당하는 팀이라 나 혼자 미디아 플랜과 전략을 짜고 피칭을 하지 않고 피칭을 하는 세일즈 팀, 인사이트를 분석하고 미디아 플랜을 제공하며 퍼포먼스 마케터의 일을 하는 나, 그리고 서치 분야에 강점이 있는 어카운트 매니저, 그리고 크리에이티브 어셋을 담당하는 사람 이렇게 크게 4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에이전시가 중간에 있다면 에이전시를 담당하는 팀도 함께 일한다. 이런 복잡한 구조속에 뉴하이어, 신입이었던 나는 늪에 빠져버렸다.
대충 알면서 아는 척 하는 걸 제일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다른 팀 동료 같으면 두 세시간에 끝낼 일들을 나는 일주일을 싸매가며 시간을 보냈다. 시장 조사를 하고, 브랜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걸 우선으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직도 리테일 쪽의 시각으로 문제를 접근했던 것 같다. 내가 이 브랜드의 기본 정보들, 가려고 하는 방향, 그리고 세일즈 쪽의 정보가 없이는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었다. 그 외에 이 브랜드의 주요 고객층이 어떤 성격을 띄고 있으며, 어떤 걸 추구하는 그룹인지, 이 브랜드의 페르소나는 무엇인지에 관해 철저하게 조사했다.
그런데 막상 그 브랜드와 시장에 대한 이해는 깊어졌는데 우리 회사가 제공하는 광고 솔루션에 대한 이해는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걸 뒤늦게 발견했다. 니즈는 알지만 어떤 상품을 추천해야 하는지 모르는 멍청한 상황이었다. 앞서 말했든 내 업무는 전략적인 미디어 플랜 컨설팅을 하는게 주 업무인데 내가 뭘 추천해야 좋은지 몰랐다. 사실 이 시점에 도달하기 전까진 내가 모르는 걸 몰랐다고 해야 더 맞다.
그래서 회사 내부 위키피디아를 검색하고, 많은 자료들을 읽고 팀 사람들한테 물어보곤 했는데 다들 하는 말이 일관되지 않아서 진짜 울 뻔했다. 특히 내 버디역할을 맡고 있는 친구는 똑똑하지만 과외는 못하는 스타일의 사람이라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그냥 이 상품을 추천하고 광고 매체는 이거 이거로 해”
왜???????????
라는 생각이 내 마음속 구름위에 둥둥 떠다녔지만 파고 물어봐도 딱 떨어지는 이유가 없어서 어느순간 포기했다. 분명 그녀가 추천한 방법은 베스트 프랙티스로 언급되는 소위 인사이트가 가득 모인 사람의 짬에서 나오는 좋은 조언이었다. 그런데 초보인 나, 그리고 공대생의 자질이 남아있는 나는 정확히 수치를 보며 이해를 하기 전까지는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이젠 납득했다.)
그래서 결국 내가 우리 회사에서 제공하는 애드 솔루션들을 모두 모아 정리한 후에 그 애드 솔루션의 벤치마킹 자료들, 쓰임새 어떤 고객층에 잘 맞는지 등을 하루에 걸쳐서 파일로 만들었다. 이렇게 또 하루를 써버렸다. 이 파일을 포함해 내가 뻘짓하며 만들어낸 눈물의 신입사원 서바이벌 키트는 따로 블로깅을 할 예정이다.
어느 정도 정보를 수집 나서 피칭 자료를 상당히 열심히 준비했다. 나름 세일즈 피칭이나 책을 읽어가며 스토리 라인을 짰다. 웃픈건 내가 아직은 협업 팀 사이의 역할분담을 정확히 이해를 못해서 사실 세일즈 팀이 해야하는 일들을 해버린 것이다. 피칭 피피티를 내밀었을 때 세일즈 팀 사람이 놀라며 이걸 너가 했어? (고맙지만 왜?) 라는 반응을 보였다.
첫 피칭의 결과는? 화장실을 갔다가 깨끗하게 닦고 나오지 못한 찝찝함으로 끝났다. 확실한 예스를 받아내지 못한 그런 피칭이었다. 게다가 스토리 텔링이 중요하다는 책을 읽은 직후라 영향을 받아 단순하고 쉽게 설명해도 되는 정보를 마케팅의 대가 앞에서 쪼랩이 괴기한 스토리를 만들어서 오히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본질이 흐려졌다. 그리고 피칭을 여러 사람이 나눠서 했는데 그 나머지 둘과의 에너지 레벨도 맞추지 못했다. 비교적 차분하게 설명하던 그들에 비해 나는 너무 신나있었고 들떠있었다. 내 길어진 방식 때문에 마지막에 충분한 디스커션을 하지 못했다.
이 글을 쓰는 이 점에도 나는 부끄럽다. 이번 피칭은 굳이 피드백을 요청하지 않아도 이미 스스로도 너무 되돌아보고 셀프 피드백을 줄 게 너무 많은 상태라서 피드백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배운점. 함께 일하는 팀과 에너지 레벨, 피칭 스타일을 맞추기. 프레젠테이션에 나온 정보 이외에도 인사이트를 줄 만한 보물 정보나 다른 대안들도 마음속에 담아놓기. 스토리텔링은 분명히 중요하되 오버할 필요는 없고 정보를 전달해서 고객을 설득하는 부분과 스토리 텔링으로 커버할 수 있는 부분을 잘 혼합하기. 브랜드에 대한 이해도 좋지만 내가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솔루션에 더 집중하고 그 논리에 대한 설명에 집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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